[박상진의 e스토리] "너는 항상 우리의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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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라이엇 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 이스포츠의 최고 무대인 월드 챔피언십 열 다섯번 째 대회가 기념할 만한 특별한 기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전 세계 최고의 클럽팀이 모여 치르는 이 대회는 롤드컵이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대회다. 이 대회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이스포츠, 아니 이스포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페이커' 이상혁의 T1이 전무한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
이미 페이커는 15년과 16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두 번 연속 우승을 차지한 페이커는 17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지 못하며 한 번 실패한 3연속 우승 기록을 결국 8년 만인 2025년에 기어이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결승 역시 페이커와 T1에 쉬운 결승은 아니었다. 1대 2로 지던 상황에서 풀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가 재역전으로 우승한 것. 그 상대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KT 롤스터였다.
불과 몇 달 전에 올해 최고의 무대에서 상대를 패배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팀이 KT라고 말하면 그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KT의 2025년은 팀명 그대로 바닥과 고점을 모두 겪었다. 작년 월드 챔피언십 진출에 실패했던 KT는 올해 '비디디' 곽보성을 제외한 팀 대부분을 바꿨다. 미드 라이너 비디디와 함께 탑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경기력의 '퍼팩트' 이승민, 정글은 팀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커즈' 문우찬, 바텀 라인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덕담과 2군 계약 이후 콜업된 피터가 나섰다.
사진=LCK
시즌 초의 KT는 누가 봐도 '가망 없음' 상태였다. 비디디를 제외한 모두가 찍을 수 있는 저점은 다 찍었고, 하위권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즌을 뛰는 선수도 이 팀의 반전을 기대하지 않았다. 팀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수원 홈커밍 경기에서도 통신사 라이벌이었던 T1에 패했고, 경기가 끝난 후 팀의 정신적 지주인 비디디는 인터뷰 자리에서 "우리는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팀이 아니다"라는 낙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저점은 이곳이었다. MSI를 앞두고 조금씩 가능성을 보인 KT는 기적적으로 레전드 그룹에 합류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다. 물론 후반기 라운드 초중반 KT는 레전드 그룹에서 패배를 거듭했지만 4위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그리고 돌풍을 일으킨 BNK 피어엑스를 잡은 KT는 이후 2025 LCK 시즌을 우승하는 젠지 e스포츠까지 잡아내며 월드 챔피언십 진출에 성공했다.
월드 챔피언십에 올랐지만, KT가 상위 라운드까지 진출할 거라는 예상은 쉽게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KT는 가장 먼저 3승을 거두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도 3대 0 승리를 거둔 KT는 4강에서 다시 한번 젠지를 만났고, 한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상대에 앞선 경기력으로 결승에 올랐다. 시즌 초 하위권에 머물렀고, 스스로 큰 무대에 설 팀이 아니라고 말했던 팀이 결승 무대까지 오른 것.
사진=라이엇 게임즈
이들의 결승 진출에는 코칭스태프와 선수 간의 신뢰가 있었다. 스위스 스테이지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커즈는 "자르반 4세를 하려 했지만 고동빈 감독의 만류로 다른 챔피언을 했다"고 전했고, 결승 진출이 확정된 후 공식 인터뷰에서 피터는 "2세트 후 감독님이 탱커 서포터 대신 유틸 서포터를 시켰다"라고 말했다. 비디디 역시 경기 후 "밴픽은 코칭스태프에서 준비해서 이에 관련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선수들이 밴픽에 관해 코칭스태프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모습을 보였다.
KT는 결승 첫 세트를 내줬지만 연달아 두 세트를 가져가며 우승이라는 꿈에 한 걸음만을 남겼다. 하지만 4세트 이후 힘이 급격하게 빠진 KT는 결국 다 잡은 꿈을 안타깝게 놓쳤다. 시즌 초 '가망 없음' 팀이 시즌 마지막에는 우승을 눈앞에 둔 팀이 된 것이다. 볼수록 갑갑했던 퍼팩트는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탑을 지배하는 선수가 됐고, 갈피를 못 잡던 정글은 상대에 예측 불가의 정글이, 이름값을 못했던 원거리 딜러는 무엇을 쥐여줘도 활약했고, 2군 계약으로 들어온 서포터는 자신이 바라보던 선수와 최고의 자리에서 마주했다.
그리고 위기에서도 항상 굳건하게 팀을 지탱한 비디디는 스스로 기적을 만들며 팀을 최고의 무대로 이끌었다. 비디디의 이런 활약은 다른 리그, 다른 팀의 선수들 모두 인정할 정도였다. 한 선수는 인터뷰에서 "미드 라이너 혼자 게임을 지배하게 힘든 메타에서 유일하게 이를 해내는 선수가 비디디"라고 말했다. 매드라이프를 보고 프로게이머를 꿈꾸고 페이커를 보며 최고의 미드라이너를 꿈꾼 비디디는 우승이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인 것.
사진=라이엇 게임즈
결승전이 끝난 후 비디디는 인터뷰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라이즈 그룹에 갈 거 같던 팀을 레전드 그룹으로 이끌었고, 레전드 그룹에서 월드 챔피언십 진출이 힘들 거 같던 팀을 월드 챔피언십에 이끌었고, 8강 진출이 힘들 거 같던 팀을 4강으로, 4강 이상 가지 못할 팀을 결승에 올렸지만 그래도 프로게이머였기에 준우승이라는 상황이 아쉬웠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워하는 모습이 결국 비디디와 KT를 결승까지 이끈 원동력이었다. 월드 챔피언십 3회 연속 우승과 함께 6회 우승을 차지한 페이커도 우승 소감에서 "기록보다 좋은 경기를 해서 기분이 좋고, 상대인 KT 역시 좋은 경기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로 이들은 최선을 다해 최고를 향해 달렸다. 우승 인터뷰에서도 페이커는 "우리 팀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었기에 비디디의 마음을 알 거 같고, 계속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격려도 함께 전할 정도로 KT의 올해 모습은 아쉬움이 남을지언정 마지막에 부끄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준우승 팀 인터뷰에서 비디디는 "올해 팀에 남은 것이 없는 거 같다"라는 말로 아쉬움을 전했다. 그러나 2025 KT 롤스터에는, 4강 승리 인터뷰에서 비디디가 "오늘만큼은 팬들이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습니다"라는 인사에 달린 댓글이 남았다. 이 댓글로 2025년 KT에 관한 글을 마치려 한다.
"너는 항상 우리의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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